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라우치 마사타케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조선인을 [[미개]]하다 평가 했으며 조선인 하인이 수만 수백여 명에 이르렀다. * 평소 성격조차 엄격하며 강경했는지라 같은 [[일본인]] 부하들에게도 꽤나 피곤한 상사였다. 일례로 부하가 올린 [[결재]](決裁) 문서를 검토할 때 그가 펜으로 고친 곳이 많았다. 또한 자신의 부임지와 관련해 생산한 물건은 품질에 관계없이 반드시 썼다. 예를 들면 조선 총독 시절 한반도에서 만든 물건이나 재배한 작물들은 꼭 식탁에 올리거나 쓰거나 했다. [[일 중독]]자 맞는 듯. * [[모리 오가이]]가 [[비타민]] 부족으로 생긴 [[각기병]]으로 [[일본 육군]]이 고생할 때에 과학적 증명이 어쩌고 하면서 비타민이 풍부한 [[보리밥]]을 금지하여 2개 사단 병력인 2만 8천 명을 저 세상으로 보낼 때, 의학진을 무시하고 [[쌀밥]]을 혼식으로 변경하여 더 이상 병으로 죽는 걸 막기도 했다. * 첫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타고 다닐 차와 조선왕실용으로 새로 어차를 들여왔는데[* 이 때의 어차가 한국 최초의 어차는 아니다. 이미 몇 년 전 [[고종황제|고종]]의 칭경 예식을 위해 시범 용도로 왕실에 들여온 포드 A형 차량이 최초였는데, 생긴 게 지금과 많이 다르기도 하고 초기의 자동차인지라 진동이나 소음이 심해 고종도 당시엔 한두 번만 타고 그만두었다고 한다. 그 외에도 프랑스영사관에서 쓰던 르노 자동차를 왕실에서 들여 운행하기도 했다.] 고종과 순종과 왕실을 위한 어차로는 [[캐딜락]]과 [[재규어(자동차)|다임러]][* 현행 [[재규어(자동차)|재규어]]의 고급 브랜드로 [[다임러 AG]]와는 이름만 같을뿐 연관은 없다. 2000년대 동그란 눈의 [[재규어 XJ]] 때만 해도 8기통 모델 중 다임러라는 최고급 에디션이 있었다. 당시엔 벤츠 S600 급은 되는 최고급 차량이었다고.]와 [[크라이슬러|오버랜드]][* 현행 [[크라이슬러]]에게 인수된 브랜드. 크라이슬러 [[지프 그랜드 체로키]]의 고급 스페셜 버전 중 하나도 이름이 오버랜드다.]를 들여왔고 데라우치 자신은 [[울즐리]] 차를 타고 다녔다. 그 외 데라우치를 도와 매국에 앞장선 [[이완용]]과 [[송병준]]을 포함한 고관 대작들도 [[뷰익]], [[포드(자동차)|포드]], [[쉐보레]] 등등의 차를 타고 다녔다.[* 포드나 쉐보레 등은 현재는 그냥 그저 그런 수입 대중차 / 국내 생산 차량이지만, 이 당시 자동차가 귀할 시절에는 이마저도 조선 국민들에겐 그림의 떡이요 고급품이었다.] 기록 사진으로 당시 고관들이 탔던 고급 자동차들이 [[덕수궁 석조전]] 앞에 세워진 장면들도 있었을 정도다. * 취미로 칼과 [[불상]]의 수집을 즐겼다. 그리고 한반도에서 [[불상]]과 석탑의 유출을 막는 조치를 폈다고 한다. 의외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, 실은 1910년 강제합병 이전에는 일본인들 기준으로 '남의 나라'인 조선 문화재 무단 반출 사건이 종종 있던 것을 합병 이후에는 조선도 '일본 땅'이 됐기 때문에 '일본 땅의 유물'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.[* 비슷한 이유로 합병 직후 조선 전국의 문화재 현황을 조사해 사진을 찍고 구조를 조사해 조선고적도보를 편찬하였다. 이 조선고적도보의 흑백 유리건판 문화재 사진들은 지금까지 남은 가장 오래된 문화재 사진자료인 것이 많아서 필수 참고자료다.] 의도는 어찌됐든 데라우치의 이 조치로 한반도에 그대로 남은 유물이 꽤 된다고 한다. * 광산재벌 구하라 후사노스케(久原房之助)에게서 [[중앙아시아]]에서 일제가 약탈한 유물들을 받아 총독부박물관에 전시했다. [[광복|해방]] 후로 일본인들은 미처 그 많은 유물들을 일본에 가져가지 못해서 유물들은 한국에 그대로 남았고, 현재 [[국립중앙박물관]]에 [[오타니 컬렉션]]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었다.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. * 그가 [[대만]]과 조선 등지에서 [[수집]]한 서적들은 현재, [[데라우치 문고]]라는 이름으로 현립 야마구치 여대에 있다. 1996년 1월 24일 [[경남대학교]]로 데라우치 문고가 일부 양도되었다(98종 135책). [[데라우치 기증 고서화 일괄|경남대학교 데라우치 기증 고서화 일괄]] 문서 참조. 이것도 경남대학교와 야마구치 여대가 자매결연을 맺고 학술교류를 하면서 노력한 결과라고 한다. 데라우치 문고는 실체 파악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하고, 밝혀진 것만 1만 8천여 권 정도라고 한다.(...) 데라우치의 수집 서적 중에는 [[퇴계문집]], [[고려사]], [[여사제강]]. [[동국통감]], [[국조보감]] 등 다양한 고서적과 희귀본 등이 었었다 * 기자를 싫어한 [[역대 일본 총리]] 3인 중 한 사람이다.(데라우치 마사타케, [[가토 다카아키]], [[사토 에이사쿠]]) * 장남은 데라우치 히사이치로, 하츠 오브 아이언 4에서 등장하는 일본군 무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[[태평양 전쟁]] 중 남방 총군 총사령관을 지냈다. [[무타구치 렌야|일본군 희대의 참변인]] [[임팔 전투]] 당시 책임자 중 한 명이다. 히사이치가 전범으로 기소되어 수용소에서 병사한 뒤 데라우치 가문은 급속히 몰락해서 파산까지 신청했고, 이 과정에서 소유권이 이전된 소장품들 중 일부가 데라우치 문고다. 또한 히사이치는 [[후생노동성]]의 전신인 [[후생성]]을 만들었고 이는 후생노동성까지 극우적 행보를 청산하지 않는 데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쳤다. 참고로 데라우치 히사이치는 [[미나미 지로]]의 후임으로 조선총독의 물망에 오르는 등 부자총독의 기록을 세울 뻔했으나 미나미 지로가 퇴임한 후에는 남방총군으로 부임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